마사다 이야기

 

이스라엘에 가면 마사다(Msada)라고 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적지가 있다. 2천 년 전 로마군이 이스라엘을 공격해 왔을 때 예루살렘에서 도망친 천여 명의 유대인 저항군이 끝까지 로마군의 공격에 맞서 싸운 요새이다.

수만 명의 로마군이 마사다를 포위하고 돌대포 등을 동원하여 공격했으나 번번이 실패하였고, 오랜 세월 동안 마사다는 처절한 저항을 계속하였다. 그러다 로마군은 요새의 서쪽에 요새의 높이와 같은 거대한 토성을 쌓아 계곡을 메우고 3년 만에 성벽을 넘어 마사다로 진격하여 결국은 점령하게 되었다.

마사다가 점령당하기 전날 밤 성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마을의 중심에 있는 광장으로 모였다. 이 때까지 살아 남아있던 유대인은 모두 960명이었는데 이들은 적에게 포로로 잡혀 수치를 당하느니 차라리 스스로 죽음을 택하기로 결정을 하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율법에서는 자살을 금기시한다. 그래서 먼저 가장이 나서서 자기 가족들을 죽이고, 남은 남자들 중에서 가위바위보로 열명을 뽑아 그들이 남은 사람들을 죽이고 해서 마지막 두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요새가 함락되기 직전 식량창고를 제외하고는 모든 건물에 불을 질렀다. 자신들이 노예가 되고 치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죽음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 결코 식량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적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그랬다고 한다.

유대인들의 저항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마사다는 오늘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지로 여기고 있으며, 특히 군인들이 훈련을 받고 정식으로 이스라엘 군인이 되기 전에 이곳에 꼭 들려서 선조들의 정신을 되새기는 곳이라고 한다. 험한 바위산을 걸어 오르면서 “다시는 이 땅에 마사다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한다고 한다.

또한 학생들의 수학여행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절망 속에서도 끝까지 비굴하게 살지 않으려는 이스라엘인들의 투지와 투쟁정신이 감동으로 느껴지는 곳이며, 압제와 자유 사이에서 인간이 벌인 통렬한 투쟁의 상징이고, 영광스런 죽음이 불명예보다 더 바람직하다는 교훈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마사다는 기원전 헤롯왕이 폭동과 반란에 대비해 황야에 건설한 난공불락의 요새이다. 황량한 광야에 솟은 400m 높이의 바위산에 인공의 성벽을 더해 만든 성으로 여기에 오르기 위해서는 스네이크 패스라 해서 뱀처럼 꼬불꼬불한 바위산 길을 1시간 반 동안 기다시피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여기에는 학교, 회당, 목욕탕, 곡물창고 등의 시설이 있고 수천 명이 몇 년간을 먹을 수 있는 식량과 식수 그리고 식용 비둘기 사육장 같은 것들이 있다고 한다. 광야 한가운데라 무엇보다 식수가 문제인데 광야에 비가 내리면 하루나 이틀만 비를 모아도 1년을 먹을 수 있게 물이 요새로 흘러들게 설계가 되어 있다고 하는바 기원전에 지은 건축물이지만 매우 과학적으로 만들어져서 요새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고 저장할 수 있도록 바위 안에 12개의 물 저장소가 있었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나라도 없이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서 서럽게 살아왔다. 특히 히틀러에 의해서 많은 유대인이 목숨을 잃기도 하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들은 머리가 좋을 뿐만 아니라 성실하고 근면한 생활을 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엄청난 부를 이루었고, 이를 기반으로 정치,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의 큰손이 되었다.

그런 이스라엘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에 막대한 전쟁자금을 지원해 주고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하게 되면 당시 영국이 위임통치를 하던 팔레스타인 땅의 일부를 분할해 줄 것을 약속받았다. 영국이 승리하자 약속대로 그 땅의 일부를 받아 나라를 세운 후 900만 명 정도에 불과한 인구를 가지고 주변의 몇억에 달하는 이슬람계 국가들을 압도하며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

조그만 나라 이스라엘이 핵무기도 보유하고 주변의 막대한 이슬람국가들을 아우르며 이렇게 큰소리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유대인들의 처절하리만큼 투철한 민족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인류학자가 말하길 세계에서 가장 머리가 좋고 근면·성실한 민족은 유대인과 우리 한민족이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도 유대인들처럼 그렇게 투철한 민족정신, 다시 말하면 나라사랑 정신이 있는가 생각해 보게 된다.

 


이 홍 영 (李 洪 永)
이 홍 영 (李 洪 永)

1948. 3. 2 출생
1963. 3 - 1966. 2    대전고등학교
1978. 3 - 1980. 8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지리교육학 (석사)
1986. 3 - 1988. 2    고려대학교 대학원 지리학전공 (박사과정)
1979. 3 - 1999. 7    국토개발연구원 책임연구원
1988. 3 - 1994. 2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지리교육과 강사
2006. 3 - 2011. 9    충청교육신문사 사장
2004. 1 - 2020. 현   경기도 용인시 문화관광해설사

저작권자 © 용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