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스님 

일본에는 수백 년 동안 내려오는 고서점 거리가 현재까지도 잘 보전되어있다.
역시 책을 사랑하는 그네들이다. 거리에서나 전철에서도 독서에 열중한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는 독서인구도 줄고 갈수록 서점을 찾기가 어려워 지고 있으며 작은 동네에서 조차도 한 두곳 있었던 책방조차 이제는 모두 사라져가고 있다.
책방순례가 삶의 가장 큰 행복이기도 하였던 필자에게는 큰 아쉬움이든다.

서가에서 만나는 한 권의 책은 인생의 스승이 되어 주기도 했고, 평소 주머니 사정이 풍족하지가 않아 망설이던 단행본을 허름한 헌책방에서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하거나 새책같은 깨긋한 책을 만났을 때의 그 소소한 행복감을 어찌 형언할 수 있으랴,
헌책 이라 함은 낡은책이나 철이 지난 책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가치있고 오래된 귀중본은 고서라한다.
고서를 수집하는 일은 열정만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경제적 여유도 있어야 옛 선인들의 훌륭한 가르침과 세월을 관통하는 주옥같은 명문을 만날 수가 있으니, 속되게 표현하면 주머니 사정이 빈약하다면 가치가 높고 평생 소장할 귀중한 책은 가까이 두고 애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험에 나오는 족집게 문항을 찝어주는 학원가의 이름 난 선생을 만나려해도 고액의 과외비를 지불해야 하 듯,
가치있고 비중있는 고서를 소장하려면 일정한 금액을 지불해야지 결국은 나의 소유가 된다는 이치와 같다.
귀중한 책의 운명도 여기저기 여러사람의 손을 거치며 유전을 하듯이 운명이 있다.
귀중본을 알아보지 못한 까막눈에게는 불쏘시개가 되고 한낱 재가되어 사라져 가지만, 책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본 주인을 만났을 때에는 희귀본과 귀중본이 되어 학문과 문화 발전에 기여 하기도 한다.

소월의 초판본 시집이 어느 옥션에서 일억 몇천의 고가에 팔렸다고 한다.

불과 몇십 년 전에는 청계천이나 정릉의 어느 헌책방 서가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꽂혀 있었을 근현대의 책이 주인을 제대로 잘 만나 오래도록 깨끗하게 잘 보관되어 전해지다 문화재가 되기도 하는 시점이다.

고서나 헌책을 수집하고 책을 사랑하는 것을 꼭 장사꾼의 논리로만 풀려는 것은 아니지만, 문화의 저변을 널리 확장하고 수호하는 일 일 뿐 아니라 문화전파자의 청지기 역할이라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며칠 전 애타게 찾으려 했던 일본 관상학의 아버지 미즈노 남보쿠水野南北(1760년~1834년)의 원전을 구하기 위해 몇칠은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야 할 처지에 놓였지만,
내가 나에게 주는 금년 중추절의 선물이기도 하며, 지금은 필자의 머리맡에서 애장품이 되어 금이야 옥이야 큰 정성을 받고 있다.
일금 100만원의 가격이었지만, 내 소유욕과 거간능력으로 60만원에 낙찰을 본 2백년은 족히 넘은 책이다.

미즈노 남보쿠 그는 누구인가?
고아였으며 지독히 방황을 한 10대를 보냈다.
이미10세에 술주정으로 감옥에 갇힌 신세였다.
감옥살이 몇 개월동안 죄인들의 생김에서 특이점을 발견하고 이름난 관상가를 찾아 갔으나, "1년 안에 칼을 맞아 죽을 상"이니 그 불운을 피하려면 출가하여 승려가 되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낙담하고는 절을 찾아 머리깍고 중이되길 간청하니, 그곳의 주지가 "1년 동안을 보리와 콩만으로 연명을 하면 입문을  허락 하겠다는 조건을 내건다. 
1년 동안을 보리와 콩만 먹고 고된 노동을 하며 지내다 절로 가던 길에 "칼맞아 죽을 상" 이라던 관상가를 다시 찾았더니 "관상이 변한것을 보니, 그동안 어떤 공덕을 지었는가?" 라며 되묻는 것이다.
남보쿠는 이제는 스님의 길보다 관상가가 되기로 뜻을 굳히고 이발소에서 면상과 두상을, 목욕탕에서 때를 밀어주며 전신상을, 화장터에서 인부로 일하며 뼈와 골격을 깊이 연구하며 9년 동안의 인고의 세월을 보내었다. 
그 이후에도 단식과 폭포수련등의 고행을 체험하며 사람의 운명은 식사食事에 있다는 깨우침을 얻게 된다. 

남보쿠는 작은 키에 입은 작고 눈은 음푹 들어가있으며 코는 낮고 광대뼈는 불거졌다고 본인 스스로도 빈상이라고 했지만, "음식의 절제에 따라 운명이 바뀐다" 는 깨우침으로 매일 보리 한흡반과 채소 한가지만 먹었다고 한다. 말년에는 가옥과 일곱채의 창고를 가진 큰 부자가 되었으며 78세의 천수를 다 누리고 세상을 떠났다. 

남보쿠가 지은1807년판 귀중본 고서를 만났으니,
한문과 일본어 공부에 더욱 매진 하련다.
비싼 대가를 지불한 책이니 그 가치를 헤아려 볼 요량이다.

 


탄탄스님, 용인대 객원교수
탄탄스님, 용인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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