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xabay
ⓒpixabay

숨은 몸

정 진 혁


숨은 내가 만질 수 있는 몸이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심장이어서
희미한 소리의 관능이어서

숨은 육체보다 더 먼 곳에 있다

늘 멀리 있어서 숨이 오는 동안 마침내 숨의 리듬을 창조한다
너의 숨소리에서 리듬을 듣는다

숨은 나를 땡볕의 나뭇잎처럼 묵묵하게 한다
묵묵함의 무아경에 빠져든다

숨 쉬는 일이 뭐지?
살아 있기는 한 거야?
굳이 대답을 생각할 필요 없는 일종의 백일몽이 온다

숨의 무릎에 머리를 기댄 당신을 쓰다듬는 손길
숨소리는 의미도 없이 문장을 만든다

숨은 물처럼 흘러
꿈의 강줄기를 이룬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숨 쉰다
모든 나뭇잎들의 모든 낮잠이다

숨끼리 뒤섞여 자신을 버린다
숨은 어느덧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른다

사는 동안만 살아 있는 숨은 숨이 아니다
숨은 당신이 살아있든 죽어있든
살아간다

 

 

 

■ 어린아이의 숨소리를 듣고 있으면 따뜻하다. 아내의 숨소리 남편의 숨소리를 들어 보면 비를 맞고 있는 강아지 풀 같은 느낌이 온다. 막 계단을 뛰어 올라 전철 의자에 앉아 보라 얼마나 숨이 나를 거칠게 숨 쉬게 하는지 나를 살아있게 하는지 숨은 살아있음이요. 숨은 문장이고 이야기이며 숨은 아주 먼 곳에서 오고 숨은 내 몸 저 속에 있기도 한다. 숨은 사랑이요 숨은 기운이고 에너지이다. 그러기에 숨은 육체가 다 하여도 살아 있다. 숨은 숨으로 살아간다.

 


정진혁 작가(1961. 01. 13)
정진혁 작가(1961. 01. 13)

공주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졸업
2008년 『내일을 여는 작가』 등단
2009년 구상문학상 젊은 작가상 수상2014년 천강문학상 수상
2013년, 2018년 아르코 창작기금 수혜
시집 - 『간잽이』 『자주 먼 것이 내게 올 때가 있다』 『사랑이고 이름이고 저녁인』

저작권자 © 용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