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몸
정 진 혁
숨은 내가 만질 수 있는 몸이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심장이어서
희미한 소리의 관능이어서
숨은 육체보다 더 먼 곳에 있다
늘 멀리 있어서 숨이 오는 동안 마침내 숨의 리듬을 창조한다
너의 숨소리에서 리듬을 듣는다
숨은 나를 땡볕의 나뭇잎처럼 묵묵하게 한다
묵묵함의 무아경에 빠져든다
숨 쉬는 일이 뭐지?
살아 있기는 한 거야?
굳이 대답을 생각할 필요 없는 일종의 백일몽이 온다
숨의 무릎에 머리를 기댄 당신을 쓰다듬는 손길
숨소리는 의미도 없이 문장을 만든다
숨은 물처럼 흘러
꿈의 강줄기를 이룬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숨 쉰다
모든 나뭇잎들의 모든 낮잠이다
숨끼리 뒤섞여 자신을 버린다
숨은 어느덧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른다
사는 동안만 살아 있는 숨은 숨이 아니다
숨은 당신이 살아있든 죽어있든
살아간다
■ 어린아이의 숨소리를 듣고 있으면 따뜻하다. 아내의 숨소리 남편의 숨소리를 들어 보면 비를 맞고 있는 강아지 풀 같은 느낌이 온다. 막 계단을 뛰어 올라 전철 의자에 앉아 보라 얼마나 숨이 나를 거칠게 숨 쉬게 하는지 나를 살아있게 하는지 숨은 살아있음이요. 숨은 문장이고 이야기이며 숨은 아주 먼 곳에서 오고 숨은 내 몸 저 속에 있기도 한다. 숨은 사랑이요 숨은 기운이고 에너지이다. 그러기에 숨은 육체가 다 하여도 살아 있다. 숨은 숨으로 살아간다.
공주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졸업
2008년 『내일을 여는 작가』 등단
2009년 구상문학상 젊은 작가상 수상2014년 천강문학상 수상
2013년, 2018년 아르코 창작기금 수혜
시집 - 『간잽이』 『자주 먼 것이 내게 올 때가 있다』 『사랑이고 이름이고 저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