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광스님, 보덕스님과의 추억과 가르침

칠장사(七長寺)는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764에 있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다. 

혜소국사가 7명의 도적을 제도시켰다는 전설이 있는 칠현산에 위치해 있다. 칠장사는 임꺽정의 전설과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지만, 지금은 어사 박문수의 기도처로 더 알려져 입시철이 되면 많은 신도들과 불자들이 찾는 전통사찰이다.

칠장사 입구에는 조선시대부터 이 도량을 가꾸며 수행하던 옛스님들의 무덤격인 장엄한 부도탑이 일렬로 서서 수 백년째 오고가는 신도들에게 합장을 받고 있다.
부도탑을 지나면 좌측으로 당간지주가 수문장처럼 서있고 약간은 쌩뚱맞은 일주문이 비켜서있다.

칠장사에는 해병대 출신의 도광 주지스님이 주석하고 계셨었다. 스님은 일본에서 태어나셨다고 했다. 그리고  5살 때 동진출가 하셨고 해병대를 다녀오셨다.
오대산 월정사에서 한국근대불교의 대강백이신 탄허스님을 모시고 시봉하며 한학공부을 하셨다.

필자가 소장중인 칠장사 도광스님 글귀가 새겨진 목탁.
필자가 소장중인 칠장사 도광스님 글귀가 새겨진 목탁.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지만 일본에 다녀온 신도가  탄허스님께 선물한 만년필을 주지않아 탄허스님 시봉을 내팽겨치고 오대산을 내려 오셨다고 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유·불·선의 대가이셨던 탄허스님 문하에서 붓글씨와 달마도를 공부한 스님은 화창한 봄날이면 큼직한 한지 한묶음을 들고 오너라 하시면 나는 덩실덩실 춤추며 신나게 미친듯이 달려갔었다.

큼직한 대붓으로 칠장사 툇마루에서 내가 부르는대로 일필휘지로 사구게를 쓰시면 상좌들은 휴지로 먹물이 번지지 않게 닦은 다음 빨래줄에 작품을 주렁주렁 매달았다.
마치 언젠가 보았던 히말라야 기슭에 나부끼던 타르초를 연상케했다.

먹물의 작품들이 실바람에 춤을 추면 절관광 나온 신도들이 빨래줄에 합장하며 "관세음보살"을 연호했다.

이때 받은 작품들은 40호 크기의 대작으로 화광동진이라는 제목의 선서화 전시회를 열정도로 많은 수량이다. 지금 보아도 대단한 작품들이고 걸작들이다.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

눈에 보이는모든형상은 마음이 만들고 마음이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한다.
결국 만물은  모든것이  마음먹기 나름이다.

천진난만한 미소로 신도들의 마음을 잘헤아려 주셨고, 큰스님들의 선묵을 수집하는  내게는 "유심"이라는 법명을 내리시며 '마음 밖에 부처 없고 마음이 곧 부처이니, 세상의 모든 형상은 마음에서 일어난다'고 가르침을 주셨다.

필자가 소장중인 칠장사 보덕스님 글귀가 새겨진 목탁.

칠장사 언덕 위의 혜소국사비 뒤에 객승이 묵을 수 있는 오래되고 허름한 요사채가 있다.

필자는 이곳에서 보덕이라는 나무꾼스님과 인연을 맺었다.
보덕스님은 지금껏 내가 만난 스님과는 너무 다른 모습으로 나를 감동시켰고 세상을 보는 또다른 눈을 얻게 했다.

한국 선불교의 시조가 되는 중국 선불교의 6조 혜능스님은  나무꾼이었다.
조실부모하고 나무를해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혜능스님은 주막에 나무배달하러 갔다가 5조 황매홍인스님의  독송 "應無所住而生基心 /응무소주이생기심"이라는 글귀에 귀가 번쩍 열려 주모에게 홍인스님의 거처를 알아내어 한 다름 지게를 내팽겨치고는 홍인문하에 들어갔다.

금강경의 요체인 응무소주이생기심은 '반듯이 한 곳에 머무르는 마음을 내지 말라'이다. 마음이 머물 때 병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왜 나무꾼스님 혜능을 거창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보덕스님이 접이식 지게와 톱을 갖고 다니며 머무른 사찰이 어디서든지 하루에 나무를 5짐 이상하는 스님이시기 때문이다.

죽은나무를 정리하며 인생도 이와같으리라 수행하시는 보덕스님은 세상을 보는 눈이  누구보다 맑았고 예리한 정신세계는 진정한 눈 밝은 납자로  한국불교의 타락상을 비꼬는 선시를 커다란 화선지에 여러장 써주었다.

나는 이 나무꾼스님으로부터 김성동 선생이 이방에서 만다라 소설을 구상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순간 김 선생에게 전화를 걸어 이를 확인하고, 그날저녁 양평으로 김성동 선생을 찾아가 하룻밤을 묵으며 만다라를 밤새워 토론한 적이 있다.

지산과 법운의 상반된 수행과정은 열반(涅槃)’으로만나고 열반 앞에서는 옳고 그름이 둘이 아님이라 하나임을 증명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러 2023년 11월 29일 한국불교계의 큰별인 자승 전 총무원장이 이곳 객채에서 소신공양(焼身供養)으로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세상의 인연은 참 묘하다.

달마도의 도광스님으로 시작된 인연이 나무꾼 보덕스님으로 이어지고, 이 인연이 만다라의 김성동 선생으로 연결돼 자승총무원장의 소신공양까지 이어진 인연의 끈은 참 질기고도 기이하다.
누구도 동업중생(同業衆生)의 범주를 벗어나 살 수가 없는가보다.

지금은 천진난만한 도광스님도 나무꾼 보덕스님도 필자도 칠장사에서 멀리 떨어져있지만 어느곳에선가 용맹정진 수행하시며 열반송(涅槃頌)을 쓰고 계시는지 그저 궁금할뿐이다.

*나무꾼 보덕스님은  필자와 헤어지며 자신의 열반송인지 한소식 깨달음 탄성인지 모를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고 구름처럼 사라져갔다.

오늘 산은 절로푸르고
물은 아래로 흐르는데
석가는 앉아서 똥을싸고

문수는 뒤로누웠네

보현이 나무에올라 젓대를부니
다시 백운은 청산을감아돌고
바람은 계곡따라 불어오는구나


 조대안
 조대안

단국대학교 경영학 석사
필리핀국제문화대학 명예 철학박사
칼빈대학교 명예 인문학박사
한국고승유묵연구소장
중광미술연구소장
용인한국근대문학관 건립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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