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운학동 내어둔에 대덕사라는 작은 토굴에는 일하스님이 계신다.

말이 사찰이지 신도도 별로없는 이름 없는 산기슭의 암자다. 그러나 이곳에는 올곳고 어느 대찰의 선승 못지 않은 눈 밝은 일하스님이 계신다.

출가한지 40년이 지난 지금도 파릇파릇한 선기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해맑은 미소를 간직한 채 수행중이시다.

■ 필자와 동갑내기 일하스님

화초를 좋아하시여 거실에 난향이 가득한 암자는 반짝반짝 윤이나는 옛가구가 놓여 있고 벽면에는 설정스님이 일하스님의 선방수행을 격려하는 편지가 편액되어 걸려 있어 더욱더 산사의 운치를 더하고 있다.

나도 사석원 화백의 작은  선수행묵화를 보내드려 사찰의 품격에 보탬을 했다.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 경허스님의  친형님인 태허성원스님 친필 '참선문' 기증하다"

1. 수덕사 성보박물관이 펴낸 도록 / 2. 필자가 수덕사 성보박물관에 기증한 1902년 태허스님 친필 참선문
① 수덕사 성보박물관이 펴낸 도록  ②필자가 수덕사 성보박물관에 기증한 1902년 태허스님 친필 참선문

일하스님과의 인연의 끈은 수덕사로 연결되어 일하스님을 모시고, 나는 설정스님과 독대하는 영광을 얻었고 나의 수호신처럼 모시던 200년된 "국일도대사" 진영과 불교박물관용으로 20년 전 구입해 보물처럼 아끼던 한국선불교의 중흥조 경허대선사의 친형 태허성원스님이 천장암에서 친필로 쓴 "참선문" 책을 수덕사 성보박물관에 기증할 수 있는 공덕의 연을 맺었다.

훗날 정암 수덕사 성보박물관 관장님께서 전시도록에 필자가 기증한 태허성원스님의  참선문이 실렸다며  도록을 보내오셨다.

설정 스님
설정 스님

사슴처럼 맑고 청아한 설정스님은 마치 필자를 어린애처럼 대하시며 손수 차를 내려 주셨는데 그정성에 감탄해 큰절을 올리니, 이것도 인연인데 오늘 붓글씨 좀 쓰자 하시니 상좌가 먹과 붓, 회선지를 준비했다.

선불교의 공안과 화두를 일필휘지로 써내려가는데 깜짝 놀랬다. 8폭 병풍을 단숨에 써내려 가시는데  한번도 멈춤이 없었다.

친구 전화번호, 집사람 전화번호도 못외우는세상인데 8폭 병풍을 한번도 머뭇거림없이 일필휘지로 써내려가는 기억력과 수만 번의 붓질의 결과가 만들어낸 간결한 선기 가 번뜩이는 붓놀림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약 20점의 작품을 선물 받아 올라오는 차 안에서 '내가 전생에 스님한테 무슨 복을 지었나' 아니면 '다음생에 갚아할 빚인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상황에 어안이 벙벙했다.

수덕사 성보박물관 정암스님에게 기증 작품을 인도해드리던 날,  필자는 다음생에 부처님께서  이승에서  무슨 공덕을 쌓고 왔냐고 물으면 오늘의 이장면을 꼭 얘기하리라 마음 먹었다.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설정방장스님을 몇번 친견하고 시간이흘러 서산간월암 주지겸 수덕사 성보박물관장님이신 정암스님께서  전화가 걸려왔다.

설정스님께서 감사의 표시로 원하는 글귀의 선묵을 써주신다며 평소 가장 마음에 새기고 있는 글귀가 있냐고 묻기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필자가 선물받은 설정 스님의 대작친필
필자가 선물받은 설정 스님의 대작친필
필자가 선물받은 설정스님의 대작친필
필자가 선물받은 설정스님의 대작친필

금강경의 요체인 반듯이 한곳에 머무르는 마음을 내지마라 마음이 머물면 집착과 번뇌가 생긴다라는 "응무소주이생기심"과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나는 누구인가의 "시심마" 그리고 중생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을 상징하는 하나의 원(圓) 모양의 일원상 대답해주었더니 며칠후 시심마 100호, 응무소주이생기심 200호, 일원상 100호 정도로 두꺼운 장지에 쓴  작품을 손수가지고 용인수장고를 방문하셨다.

내생에 참 아름다운 날이었다.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엄청난 사건이자 누구에게나 이날의 추억을 자랑하고 싶은 내생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이 작품들은 지금 수장고 한구석에 망부석처럼 서서 수 많은 고승유묵을 지키고 서있다.

 


 조대안
 조대안

단국대학교 경영학 석사
필리핀국제문화대학 명예 철학박사
칼빈대학교 명예 인문학박사
한국고승유묵연구소장
중광미술연구소장
용인한국근대문학관 건립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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